월요일 아침, 새벽미사만 있고 다른 미사가 없다.
고양이란놈 야웅거리며 깨우지만 니는 울어라 나는 잔다 하고 편하게 늦잠을 잔다.
느긋하게 일어나 야옹이란놈 따듯한 물을 주고 습관처럼 컴 앞에 앉았다.
전화가 온다. 애들 유치원 자모들의 모임이 벌써 삼십년넘게 이어오고 있는 한 회원의 전화다.
추석아래 모임날이 촉박하니 날자를 당기자는 얘기다.
우리 모임은 마음맞는 다섯명인데 이중 세명이 유방암을 앓았고 한명은 갑상선 항진증으로 고생하고 있고
나는 허리 협작증과 전방위증, 무릎통증. 지간 신경종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 친구는 유방암 투병중인데 폐에 암이 발견 되었다고 서울로 간지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미번 모임도 참석하기 못할것 같다.
친구 다섯명이 모였는데 다 몸이 시원찮은데, 이번 폐에 암이 발견되었단 친구는 병 증세도 우리들에게
알리길 꺼리고 있다. 돈도 있고 남편의 사랑도 그득하고 두아들다 잘 되어있는 친구인데 왜 그런 몸쓸
병이 생기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걱정거리가 없는 친구인데......
또 한친구도 유방암이 십년이 넘었는데 많이 아프다는데 어디가 아프냐 물으면 다음에 얘기할께를 반복
한다. 이렇게 가까운 친구에게도 솔직하게 얘기를 못하는 그 심정을 알수가 없다.
친구라면 솔직하게 얘기 할수 있을건데.....
데레사도 말끝마다 돈 얘기를 하는게 꼭 내 작은언니 같다. 아니 더한것 같다.
뭔가 열등감이 있는듯 한데 알수가 없다, 아버지 사업이 고등학교다닐때 망하면서 부모들은 의대다니는
큰아들의 교육에 올인 하다시피해서 자기는 대학을 못갔다고 지금까지 친정엄마를 원망하는 말을 하곤 한다
살아가는 삶의 큰 지혜가운데 하나는 이상과 현실을 타협하고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도 큰 사람이 되고 싶었었다. 다른 친구들과 학력은 떨어지겠지만 실력 만큼은 떨어지지 않겠다고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읽어댔다. 덕택에 어딜가도 실력은 인정을 받았었다.
언제 부턴가 현실과 타협하고 살았더니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성당 다녀오면서 바람의 언덕에서 맞은편 산언덕까지 들어선 그 많은 집들을 보면서 하느님께 따지듯화살을 쏘았다. ' 하느님, 내가 와이리 살아야 됩니까?' 하느님은 즉시 응답 하셨다. ' 니는 와그리 살믄 안되는데? ' 할말이 없었다 하느님 역시 내게 화살을 쏘셨다. 그러면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던것 같고
내가 이리 사는 이유를 찾기시작했고 이젠 내 고통스런 삶을 인정했고 하느님께서 내게 이런삶을 주신 그
신비함을 어렴풋이 짐작을 하기 시작했고 감사하기 시작했다.
두아들이 어제 그제 연달아 와서 맛있는 저녁을 사 주고 갔고 손자놈은 입술을 앞으로 쑥 내어밀어 뽀뽀를
연신 해 주고 갔고....
언젠가 이 유치원 친구들끼리 잘 본다는 사람에게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들어서는 순간 이 젊은 여자가 눈빛으로 나를 제압하려는듯 쏘아 보는걸 나도 같이 쏘아보고 앉았는데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보더니 하는 말이 남편복도 자식복도 없다 했다. 내심 기가 찼다.
"내 자식둘, 돈은 많이 벌겠능교?" 자식 둘..돈은 많단다. 내가 맞받아 쳤다.
"보소, 지금 시대에 그렇게 말을 하면 안되지, 요즈음 잘되는 자식들은 다 멀리 떨어져 살며 용돈 좀 보내주는게 단데...예전 식으로 옆에서 모시는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건 아니지, 돈 잘벌어서 엄마 용돈만 보내줘도 자식복은 있다고 봐야지. " 그 점쟁이 나한테 아무말도 못했다.
과연 내 말대로 아들놈들은 이 두 늙은 부모에게 고맙게 해주고 있다
우리 두 부부 늦복이 터졌다고 하며 잘 살고 있다
모든것 마음먹기 달렸다.
마음으로 모든게 이루어진다. 예전 어른들의 말씀이 다 맞다.
오늘은 노인병원의 언니에게 다녀오려 한다
그래도 내 피붙이 인데 내가 너무 소원했다.
고맙습니다. 하느님 우리아부지, 예수님, 울엄마 성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