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짧게 깎고 말까지도 어둔한 영감이 앉아있다.
영감과 둘이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얘기를 나누는데 어떨땐 의사교환이 되다가 안되다가 한다.
그래도 부인을 잘 만나서 지금까지 저렇게 살아있는 사람이다
둘째놈이 점심을 같이 먹자 한다.
어디로 가느냐 물으니 정관으로 간다 한다.
정관으로 가려면 이왕이면 영국이 아저씨 집으로 가면 어떻겠냐니 영감도 좋다한다.
덕택에 소식 궁금하던 사람을 만났다.
예전 장사 할때 우리집에서 도와주던 사람이고 나하고는 처녀때 부터 아는 사이다.
그가 언니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개업하면서 우리집으로 와서 일을 가르쳐주고 도와준 사람이다.
사람이 너무 선해서 언니, 형부가 나하고 결혼시키려 생각해봐도 둘이다 너무 착해서 안되겠다 했다는 말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정말 좋아했던듯 싶고 나는 내 결혼 상대자로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어찌어찌 결혼했고 그 사람도 결혼했다. 6남매의 장남인 그사람의 부인은 참 칠칠했고 일도 잘하고 생각도 깊은 사람이었다.
부인이 있는데도 술이 과하면 우리 영감 있는 앞에서 내 손을 잡으며 갱희 아가씨를 좋아했노라 하던 사람이다.
그 부인은 남편이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못했음에도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두 남매를 두고 잘 키워냈다. 시누이와 시동생에게도 부모 못잖게 잘 했다. 음식솜씨 또한 좋았다
남편이 뇌경색으로 투병하고 부인은 고깃집을 내었다.
부인의 음식맛과 푸짐한 인심으로 돈도 많이 벌고 사 놓았던 땅에 건물을 올려 3층에 살림을 살고 일 이층은 식당으로 집을 지어 바쁘게 살고 있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남편인데 어느날 나한테 "갱희 아가씨, 내가 그래도 아침마다 저 영감한테 절을 합니더 " 했다.
그 말이 내 귀에 맴돌고 마침내는 나도 영감을 향해 절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먼저 하느님아부지, 예수님, 성모님을 향해 절을하고 영감한테 절을하고 또 베란다로 창문밖을 보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절을 했다. 하루에 다섯번씩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절을 했다
남편에게도 비밀로 했는데 언젠가 부터 까다롭던 남편이 좀 수월해 지기 시작해서 그 부인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얼마나
고맙던지 평생 잊을수가 없었다
참 고맙다, 내 주위엔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모든것을 내려놓은 지금이 나는 좋다
욕심은 끝이 없지만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텅빈충만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