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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지나19 2021. 3. 30. 20:30

아들놈들이 그놈의 너튜브를 보지 말라고,  매번 말해도 이건 중독된 사람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너튜브 부터 틀게된다.

방송매체들의 뉴스를 믿지 못하기도 하지만, 허긴 너튜브도 못믿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뉴스를 보다가 아들놈들이 하도 믿지마라 해서 봄이기도 하고 들나물을 소개하는 프로들을 봤다.

갈퀴나물이란게 있는데 맛있다고 해서 어제 아침 산에 간김에 갈퀴나물, 화살나무순, 광대나물등  산나물들을 뜯어와서

데치는데 나물향이 역겨워 다 버리고 말았다. 이젠 다시는 나물을 욕심내지 않을거다.

그래도 집 베란다밑 쑥이 얼마나 탐스럽던지  기어이 다 뜯어서 데치고 쌀을 물에 불려 놓았다.

내일 아침일찍 방앗간에 가서 절편을 만들어 놓고 영감 입 심심할때 먹으라고 냉동실에다 몇개씩 포장해서 넣어놔야 겠다.

 

저녁을 먹고  쓰레기 버리러 나가하늘을 쳐다보니 엷은 구름 사이로 별이 다섯개나 보였다. 왠일?

이 도시에 살면서 참 아쉬운게 노을과 별을 못본다는게 이 나이 많은 할매가 되어도 아쉽기만 하다

구글의 지도로 내가 어릴적부터 살던 집을 검색해 본다.

작은 산밑의 우리집은 산에서 내려오는 오솔길이 있어 어릴적 젓갈 파는 할배가 젓갈을 단지에 넣어서 지게를 지고 팔러다니는데  꼭 그 오솔길로 내려 오셨다. 아버지는 창란젓을 좋아하셔서 종종 샀는데 그당시의 창란젓은 굵고 맛이 있었다. 양념도 하지않고 절여만 놓았는데도 굵은 창란은 바닥가에서 자란 아버지가 참 좋아하셨다.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통통한 아주머니가 애기와 함께 대소구리를 가지고 오면 엄마는 어김없이 밥을 한그릇 가량 넣어주곤 했다. 그 아줌마는 우리집이 제일 처음 들리는 곳이어서 엄마는 더 신경을 써서 드렸던것 같다.

 

어릴적 기억나는 집은 양철지붕이었다. 일자로 지은 양철지붕은 비가오면 빗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렸고  앞 마당엔

작은 텃밭, 그리고 닭을 키웠다.  집 옆과 뒤는 논이었고 집 왼쪽으론 산이 있어 우리집은 긴 골목길을 걸어들어오곤 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회사를 다니시고 해서 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것도 아니어서 나는 팔꿈치가 헤어지는 교복을 얻어서 입고 다니곤 했다 . 다 못사는 처지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것 같고 부모들 속 썩인적은 한번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는 좋았지만 잔머리도 굴리지 못하고 엄마에게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만 듣고 살았던것 같다. 니가 쪼매만 고생하면 다른 사람들이 편하다  하시며 항상 나보다도 남을 배려하란 말씀을 하셨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나한테만 그런 말씀을 하셨을리가 없는데 딸셋 아들둘 중에 다른 형제들은 나하고 참 다르다. 둘째 언니도 다른사람들이 나하고 한 자매가 맞나란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오빠는 기다리던 아들이어서 특별 대우를 받았고 남동생은 또 막내라고 배려하고.......  

 

지난번 미국의 형님이 오셔서  고관의 어떤집에 사주를 보러 갔는데 당 사주 였다. 잘 본다고 소문난집이라는데...

형님걸 보고 나도 봤다. 그 어르신이 나보고 아주머니는 성불 하십니다  를 세번이나 말씀 하셨다.

형님하고 나오며 형님, 저는 성공 했습니다 제 목표가 그것이었는데요, 하고 웃었는데 지금은  그 말이 족쇄가 되어  말 한마디 하기도 조심스럽다. 내가 성불 할려면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할수도 없고 말 한마디, 행동하나, 다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살기가 더 힘든것 같다.  그래도  이 生을 잘 살아내어 꼭 하느님의 나라로 가야될텐데.......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