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힘내라 갱희야!!

지나19 2021. 11. 29. 23:01

가요무대에  양희은씨가 나와  한계령을 부른다.

불현듯 옛생각이 난다.  예전엔  정초에 관광버스를 타고  강원도 쪽으로 해맞이겸  애들과

모임회원들과 많이 갔다.  한번은 한계령을 지나 가는데  산 구비구비 돌아 오는데 그때는

살 만했는지 그냥 한계령이란 노래를 버스 속에서 부르고 왔는데  사업이 실패하고

밤이 오면  내일이 안왔으면, 내일은 내가 눈을 뜨지 말았으면....... 그렇게 살았다

남편은 가장노릇을 못하고 나는 그래도 애들과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다.

마침내는 내 한계를 느끼고  남편에게 난더이상 못하겠으니 당신이 택시 운전이라도 해서

가족들을 살려 보라고 했는데.....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하고 난 한쪽귀가 안들리는 난청상태라  일자리는 있어도 할수가 없었다.

어릴적 집 화재로 고열이 나면서 오른쪽 귀의 청신경이 망가져 버렸던 것이다.

조용한데서는 일을 하는데 좀 시끄러운곳에선 내 오른쪽사람들의 말은 들을수가 없었다

누가 부르면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지못해 오해도 많이 받고 나는 나대로 소리의 방향을 찾느라

힘이 들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때 나는 버스안 라디오에서 한계령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남모르게 참, 많이도 울고 다녔다. 누가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고  누가 라면 한상자. 쌀 한되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 역시 그렇게 어려운 티를 안내고 살기도 했지만  큰놈은 대학교 다닐때 왕복 네번을

타야되는 버스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가기도 했다.그때는 환승도 안 될때니까, 이 낮선 아파트에 돈 한푼 빌릴집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돈 다 떨어먹고 후진 아파트에 들어와 남편이 운전한다는게 얼마나 부끄럽던지  나는 길을

걸을때도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이 후진 집에 산다는 것도 부끄럽고 남편이 택시 운전 한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달이 밝아도 눈물이 났고 하늘이 너무 파란날도 그저 눈물이 났다.

자식들을 생각하면 살아내어야 했고  죽음도 무서웠다. 남편이싫어서 도망갈까, 예전 어른들 말씀으로 문지방에 한쪽발은 바깥으로 내어 놓고도 살았다  그렇게 속으로 흐느끼며, 흐느끼며 살아내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내 남편이 도둑질도 안하고 남에게 사기도 안치고 정당하게 일해서 돈을 버는데

내가 왜 부끄러워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쳐가면서 나는 현실과 타협을 했던것 같다.

한계령, 이것이 인생이다주제가인 인생, 길잃은참새, 비가,  등등...... 눈물나는 노래를 부르며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이제사 그 모든것이 내게 주어진 하느님의 과제란 생각을 하며 저 별난 영감이 그래도 마누라는 어지간히 사랑하는데......

그리고 영감의  립서비스로 마음이 풀어지고  두 자식을 출가 시키고  잘 해준것도 없는데  우리에게 효도하는 아들,

착한 며느리, 이쁜 손자......이젠 감사하며 살 일밖에 안남았다.

나는 내 박복함을 한탄 하면서  일찍 죽을줄 알았다. 근데 이제  칠십을 넘고  아직은 큰 병도 없이 사는 것이 정말 고맙다. 오늘 칫과가서 어금니를 뽑고 고생은 했지만 이것도 내가 정기검진을 하지 않은 탓이라 생각하니 의사샘께 미안 하기도 했다.  늙으면 불편하고  힘들지만 하느님이 거두어 주실때까지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진정  감사드리는 것이 그 모든 시련이  하느님께서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 마련하신것이며  그래도 내가  잘 살아왔다는 것이다.  가끔씩은 잠자리에 누워서 내가 나를  꼭 안고  수고했다 갱희야.... 하고 나를 다둑여 주기도 한다

 

이제 올해도 한달 밖에 남지 않았다. 후회없이 하루 하루 잘 살아내자, 갱희야,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