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울 오빠

지나19 2022. 5. 21. 13:42

주름진 얼굴에 야윈볼에 처연한 눈빛과 표정이, 마치 전장의 장군이 대패해  마지막 적장의 칼앞에 몸을 맡기듯

모든걸 체념한듯......  그냥 볼때는 그렇게 까진 아니었던것 같은데 사진이 다 말해 준다.

딸 하나 낳고는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고민하던 엄마께 아들인 오빠는 큰 선물같은 존재 였을 것이다.

영특하여 공부도 잘 해서 엄마는 의대를 보내고 싶었지만  돈 때문에 공대를 보내고 말았다.

울산의 대기업에 취직하여 잘 근무하는 오빠를 작은 언니가 픽업하여 가게에 데려왔다.

남편과 나는 오빠가 회사를 그만 두는걸 반대 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후  우리형제들은 작은 언니의 말이라면 

엄마말 처럼 잘 들었다. 오빠는 언니, 형부와 봉급등,  회사에서 받던대로 받기로 하고  내가 알수없는 약속들을 

하고 오빠는 언니 가게에서 일을 하였다. 그러나 언니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오빠는  혼자 독립을 하였었다.

없는 돈으로 납품을 하면 대금은 석달, 넉달, 어음으로 받았으니 남는건 없었다. 돈이 필요하니 어음은  현금으로

소위 깡 이라는것 하면 남는것 돈이자로 다 나갈 지경이었다.

그렇게 빚으로 빚으로 장사를 하다가 결국은 부도를 내고  대구 친구 회사에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오빠는 월급을 올케에겐 생활비만 주고 야무지게 모았고 마침내는 딸들이 있는 경기도로 이주 하였다.

마음고생, 몸고생으로 점철된 오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픈데.......

 

처녀때 오빠는 내 친구들의 우상이었다.오빠는 그 특유의 유머로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친구들이 말은 못했지만 

오빠와 사귀고 싶어했다.그러다가 오빠친구의 동생인 올케와 결혼 하였다.

딸 둘을 낳고 공부를 시키고 다 짝을 지워 보내고  둘이서 살았는데 올케는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오빠와  참 힘들게 살았다. 오빠는 오빠대로 그런 올케가 못마땅 했고......   부부사이의 일은 둘만 안다고 하지만  오빠가 힘들었던것을

짐작해 보면 남자가 앞앞이 말도 못하고  여러가지로 상처가 많았던 것이다.

더구나 낮선땅에 갔는데 이젠 몸도 예전 같지 않으니  모든걸 체념 한듯,  가엾기만 했다.

나한테 어찌했든, 내가 어찌했든  그저 우리의 운명이 가혹할 뿐이었다.

 

작은 언니야 행복할듯 하지만  내가 볼때는  언니는 욕심이 많아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놈이 초상집에 갔다와서 아프지나 않은지 하고 안부 전화를 해왔다.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돈 있는 사람도 나만큼 아닌것 같다고 아들한테 얘기 했더니  웃는다.

그렇지 않은가?  언니 초상치고 오는데 이젠 일을 할수도 없고 가만 앉아 있다 오는데도 아들놈이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지 얼마나 고마운지....    욕심만 버리면 행복할수 있다.

진작에 마음을 비울수 있었던 내가 참 다행이다. 그런 지혜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저 내가 믿는 하느님아부지, 예수님, 성모님께 감사하다.    오늘은 제법덥네. 올여름 들어 처음으로 작은 선풍기를 안고 앉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