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놈 온 가족이 다 코로나에 걸렸다 한다.
며느리도 열이나고 목이 아프다 한다. 말못하는 작은 손자놈은 얼마나 괴로울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놈의
짜증소리가 내 가슴을 때린다. 고생하란 말밖에 할수 없는 내가, 이 사태가 밉다.
이 바이러스가 터지면서 이 지구촌은 온갖 소리로 시끄럽고 기득권자들은 이 바이러스로 큰 돈을 벌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가야 했다. 과연 그 돈 많은 사람의 뜻대로 세상인구의 삼 분지이가 줄어들면 그들은 행복할까?
사람으로써의 할일을 하지 않은 그들을 신은 가만히 버려둘까?
나는 부자들의 삶은 알지 못했다. 내 주위에 그렇게 부자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어릴적 이종 언니의 집을 갔는데 처음보는 과자와 과일을 주는데 과자는 바삭바삭 한게 색갈도 뽀얀게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과일은 주황색 껍질을 손으로 벗기니 속살도 주황색으로 약간 투명한 빛인게 그 색갈이 너무 신비스럽고 황홀했다. 그때 나는 아.....부잣집은 이런걸 먹는구나 싶었다.
레지오를 처음 시작했을때 단원중 한명이 정말 부자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체를 갖고 있고 뉴스에도 자주 얼굴이
보이는 남편이 있는데 옷입는건 아주 검소해 보였으나 그 옷은 아는 사람만 아는 명품이었고 항상 말을 조심해서 하는
분이었다. 하루는 명란을 가져 왔는데 밀폐된 깡통에 포장되어 있었는데 단원들에게 모두 한통식 나눠주었다.
집에와서 열어보니 명란알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적당히 익어 있었고 맛은 또 기가 찼다.
남편과 아이들이 이렇게 맛있는 명란은 처음 먹어본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었다. 그때 짐작했다.
나는 돈이 많으면 그 인생 또한 재미없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들은 그들나름의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옷도 패물도 집에 가만 있으면 상인들이 물건을 가져와서 고른다고 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백화점에도 갈 필요가 없이 그저 전화만 하면 모든일이 해결되고 그야말로 갑의 생활을 할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알리가 없다. 예전 속담대로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 더니 어르신들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나는 클때부터 엄마가 나누며 사는것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내게 물건이 하나 생기면 그 물건이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없을까 살펴보고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나누어 주게 되었다. 그런 나를 남편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제 다 늙어서 살아보니 남편도 어렴풋이 알아가는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아직 완전한 나눔의 생활은 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나이 칠십에 살림이 늘고 있다. 지난번 도배집 아주머니가 와서 보고 살림이 이리 많은 집은 처음본다 했다.
아들 말대로 없는 삶의 비애이다. 버리고 다시 사면 될텐데 언제 다시 살수 있을지 알수 없으니 그저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남편은 버리는 것을 질색을 한다. 박스 하나도 잘 버리지 못하고 쓰레기를 박스에 담아 버려야 된다고 모아놓는 사람이니 수납 할데가 없는 이 평면의 아파트는 언제나 비좁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에 사람들이 못오게 한다. 사십년전 양복을 버리려 하니 이제 살이 빠져서 입을수 있다고 못버리라 한다.
물론 아까울 것이다. 당시 부산에서 제일 잘하는 양복점에서 백만원넘게 주고 맞춘 옷이니 ......
그러나 이젠 정리를 해야 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니 당분간은 외출도 삼가고 집 정리나 하자 해야 겠다.
나도 법정스님 처럼 깨끗하게 살고 싶다. 방 하나는 완전히 비우고 나도 명상 이란걸 하며 살고 싶다.
나도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