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쟁이, 아직도 큰 소리만 치면 이기는줄 알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 지른다.
별일도 아닌데........ 작은 손자놈 봐주러 못가면 빨리 전화를 해주지 그렇게 임박해서 전화를 한다고 소리 지르는데....
손자놈을 봐주러 가기로 약속을 해놓고 그놈의 감기가 안떨어지고 아침부터 영감하고 한바탕 해서 밥도 안먹고
그래서 그런지 어지럽기 까지 했다. 할수 없이 며늘에게 전화하고 영감에게 못가겠다고 했더니 이 영감이 빨리
연락 안 했다고 내게 소리를 지른거다. 설겆이를 하면서 나혼자 '어느 엄마가 자식도와주는거 싫다할까' 했더니
말꼬리 붙들고 늘어진다고 큰 소리를 질러댔다. 이해가 안갈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나에게는 자존심따위는 없는것 처럼 뭘 묻고 할때가 아직 가끔은 있는데......
영감쟁이, 부잣집 셋째 아들로 태어나 가정교육, 학교교육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사람만 좋은 부모를 만난것 같다.
아들넷을 둔 시부모는 우리 영감을 낳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영감이 복덩이라고 귀여워 했다고 한다.
아들만 넷인데 큰 아들도 대학중퇴, 둘째도 중퇴, 셋째, 우리 영감은 중 고등학교까지 돈으로 돈으로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고졸이라는 간판만 달고 내가 결혼하니 시동생은 전문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시동생에게 대학 편입해서 공부를 더 하라고 시간 날 때마다 얘기 했더니 정말 편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더니
자기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도 했다. 큰 시숙은 법대 중퇴를 했다는데 내가 시집가니 개인택시를 하고 있었다.
둘째 시숙도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구매과장이란 직함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남편은 시삼촌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시댁에선, 남편이 직장생활이 힘들걸 알았던지 똑똑한 아가씨를 구해서 장사를 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다.나는 오빠가 결혼한지 한달도 안되어서 친정엄마가 가을에 결혼식을 하면 어떨까 하니 시댁에선 아무것도
안 해와도 된다며 시아버지 회갑과 같이 하자며 결혼식을 재촉했다. 친정집안 오빠가 엄마께 그집이라면 괘안타며
결혼 시키라는 바람에 엄마가 용단을 내렸다. 죽자사자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엄마의 사람보는 눈을 믿고 있었던 나는
그저 엄마말만 들었다. 엄마말만 들으면 다 잘되는줄 알았다.
근데 결혼하고 보니 난 이런사람은 첨 봤다. 결혼 하기전 혼수 준비할때 도대체 말이 없는 사람이라, 그 당시엔 나는
남자는 말이 없고 입술이 얇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오트바이 사고로 앞니가 전부 의치여서 잇몸이 함몰되어
윗입술이 얇고 눈은 가늘고 길어서 매서웠다. 나는 결혼은 주사위를 던지는 심정으로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알고보니 남편은 말더듬이가 있었고 영어단어, 한문, 그 당시엔 명함에 한문을 많이 썼는데 거래처에서 명함을 받아도
잃지 못하고 거래처에서 전화로 오더를 받을라 치면 답답하기가 한량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이 없으니 가게에선 내가 있어야 했다. 주문을 받을땐 주문을 불러주는 사람보다 내가 먼저 받아적고 기다릴 정도로 빠르게 받았다. 계산기는 손가락 다섯개를 다 두드리며 해대니 보는 사람마다 놀랐다.
그렇게 열등감으로 영감 자신도 살기 힘들었겠지만 나도 참 힘들었다. 남자가 해야될 일들을 내가 다 할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영감은 두말도 안들어보고 소리부터 질러대니 이 작은 아파트에 우리집 영감이 소리지르면 내 얼굴은 뭐가 될까? 그래서 나는 영감이 소리 지르면 그만 말문을 닫고 속으로 속으로 상처가 깊어지기만 했다.
소통도 잘 되지 않았다. 나도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도대체 대화의 레벨이 맞지 않으니 이야기 하다가도 그만 말문을 닫고 혼자서 살아야되? 말아야되?를 되내이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경력이 단절되면 갈데가 실당에가 설겆이 하는일 밖에 할수가 없었다. 또 대 내외적으로 망신은 따논 당상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날부터 가슴이 망치질하는것처럼 아프기 시작했고, 내과의사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던 그 고통을 정신과 의사가 잡아 주었다. 지금 십년이 넘게 정신과 약을 먹지만 아직도 완치는 되지 않고 있다.
의사는 마음편하게 놀러나 다니란다. 그럼 안아프단다.내가 생각해도 여행을 가면 훨훨 날라 다니는것 같았다.
그러나 이젠 허리,무릎,발, 이 몸의 기둥들이 다 시원찮으니 여행은 꿈속으로나 할까?......
다 내 운명이겠지만 이런 영감과 산다고 정말 고생했다.
그래도 가끔은 그 영감이 고맙다. 덕택에 내가 살아나가야 할 길을 찾은것 같아서...
예수님 말씀대로 끝없이 용서하고 끝없이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가슴속에 새길수가 있어서.....
그것만이 내가 해 나가야 할 일임을 이제사 어렴풋이 알게 된것 같아서....
그래도 어제의 상처는 또 한참을 내게 고통을 주고 나는 또 견뎌내고.........
참 슬픈 날이다. 이 나이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