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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슬프다

지나19 2021. 11. 20. 23:06

호박죽을 끓였다.  호박을 잘게 썰어 어제 오후에 푹 삶아 두었다.

쌀도 씻어놓고 냉동실에 불린콩도 내어 놓았다.  영감은 싫어 하지만 큰 며느리는 이 호박죽을

좋아 하는것 같아 그제 아들놈집에서 오는길에 호박 한 덩이를 사 왔던것이다.

끓이다 보니 찜솥으로 한 솥이나 되었다.  앞집에 한 냄비를 주고 아들놈 집에도 거의 반이나 

가져다 주었다.  두 손자도 주니 맛있게 받아 먹는걸 보고  집으로 왔다.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에 보니 집앞 큰길에는 벗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었다.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곱게 물든 잎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나무다.

시민공원앞길에 선 은행나무도 드디어 고운 노란빛으로 물들고  공원안 단풍잎도 빨갛게 물들고 백합나무도 이젠

지쳐가는지 그 붉던 잎 색갈이 옅어지며 숱이 점점 적어지는것 같았다.

붉게 물든 나무들이 애틋하기도 하지만  내 인생을 생각하면 무릇 생명을 가진다는것은  고통을 안고 가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도 추운 겨울을 맨몸으로 견디고 찬물을 위로 위로 끌어 올리며 드디어 꽃을 피우고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가을엔  차마 보내기 싫을 잎들을 하나 하나 떠나 보내고 긴 겨울은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지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역시 얼마나 지나왔을지도 모를 그길을 가슴속 깊이 고통을 삭이고 슬픔을 삭이며  꽃처럼 아름다운 젊은날을 지나

이제 반백이 된 머리와  깊게 패이기 시작하는 주름을 보면서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온 날들이 허무하기도 하지만 그 날들이 다 내게 필요했던 과정이라 생각하며    바보로 등신으로 살아온 날들이

헛되지 않기를........

윤동주 시인처럼 살아있는 모든것들을 사랑할수 있기를......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말없이 내 삶을 주관하시는 그분께 갈수 있기를.....

깊어가는 가을은  내게 슬픔만 안겨 주는데...........   십년전에만 손자를 만났더라면........

아쉽다,  허긴 그것조차 내 욕심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