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웅이가 자꾸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다.요놈은 밥이 남아있어도 꼭 새로달라한다.
새벽 두시에도 깨워서 따신물을 달라해서 주었고 또 이리 아침일찍 깨워서 밥을 달라한다.어찌 생각하면 그놈 덕택에
조금 일찍 일어날수 있고 가끔은 낮잠을 자기도 한다.
오늘도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있으니 큰 길에서 앰블랜스 소리가 몇번이나 들린다.
산 넘어 종합병원이 있으니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들리니 가끔은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느님, 급한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도와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한다,
내게도 저런일이 생기지않을거란 보장이 없으니 내가 할수 있는건 기도 밖에 없다.
그제도 성당 형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니 이젠 죽고싶다 하신다.형님 , 그건 저도 그런데요,
그래도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가야지요. 저는 형님이 어르신 따라 하실까봐 걱정 했습니다.
형님께서 하느님을 믿는 나는 그러면 안되지 하신다.그럼요 형님, 안되지요.....
성당에서 형님 발목을 보고 제가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미국에서 46년을 살다가 오신 형님은 자시는 것도 고기와
약간의 채소다.처음 오셨을때는체격도 좋으시고큰 키에 또 한국사람인데도 미국사람처럼 흰 피부가 눈에 더 뜨이는
분이었습니다.모든걸 긍정적으로 보시고 우리에게 항상 격려를 해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남편이 군에서 높은 계급으로 퇴임하시고 미국으로 가셨는데 지금 현충원에 계시는데 형님도 죽어서 영감옆에
묻히려고 미국에 아들과 며느리를 두고 형님은 입은옷에 백만 들고 오셨다 하셨다.
그만큼 영감님을 사랑하셨던 것이다.그 형님의 남편이 병이 들었는데치료가 힘든 병이었던지오래 고생하셨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 어르신이 형님에게 말씀하셨다 한다 "여보, 정말 미안한데 내가 이렇게 오래 당신께 폐가되니
안되겠소 내 뜻을 따라주시요" 하시고는 그날부터 곡기를 끊었는데 보름만에 돌아가셨는데 고통도 없이 곱게 가시고
현충원에 안장 되셨다 한다.생각해 보면 산다는건 하룻밤 꿈같고 실제로 지난날을 생각해 봐도 지금은 그때의 고통은
느낄수가 없다. 오늘의 이 행복이라고 고집하는 오늘도 지나고 나면 간밤의 꿈 같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충실하게, 선하게, 나누며 사는것 밖에는 길이 없는것 같다.
하느님의 현존을 믿으며온 세상 성인들의 사상의 합일을 믿으며 사는것은 오로지 그 성인들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며
사는게 잘 사는거라는 생각은 변함없는데 인간의 몸을 가지고 , 얇은 지갑을 가지고 그 이상을 실현 하고 싶어하는
내 팔의 짧음을 한탄 할 수 밖에 없다.여자로 태어나고 없는집에 태어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도 가끔은 한다.
건방지고 교만한 내가 지갑이 두꺼웠으면 어땠을까? 끔직하다.
항상 지갑이 두둑하고 귀공자 같던그 오빠친구를 만나지 않은게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낮아지자, 낮아지자........
하느님요, 어데까지 낮아질까요?저 고통스런 싸이렌 소리라도 좀 안들리게 해 주시이소,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