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서대신동 역에 내리니 길이 도대체 몇갈래 인지 모르겠다.
할수 없이 가까운 커피점 아가씨께 물으니 바로 왼쪽으로 돌아가면 된다 했다.
과연 바로 왼쪽으로 도니 삼육병원 간판이 보였다. 몇미터 안가면 될것 같았다.
비탈길이 나왔다. 그리로 가면 병원 현관이 나올줄 알고 비탈길을 걸어 올라갔다.
예전에는 이렇게 가파른길은 숨이차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숨찬줄은 모르겠고 다리가 너무 아프다.
이제보니 그건 병원 뒷길 이었다. 빙 돌아 현관으로 가니 카드없이는 못들어간다 한다.
마침 바깥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들이 카드로 문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 층까지 다 눌러 주셨다.
7층에 올라가니 어디가 어딘지 알수가 없다. 형님께 전화 하니 요양보호사 아줌마가 자기도 7층인데
왜 안보이냐며 헤메더니 간호사를 바꿔주었다. 간호사가 성가병원인데요? 한다.
아이고 , 성가병원으로 옮긴걸 얘기 해주지 않고.
형님은 고생했는데 집에 그냥가라 하신다. "아임니다. 그 병원이 집에 가는길에 있으니 갈랍니다."
버스를 탔는데 마침 영주터널을 지나서 가는 버스다. 부산역에서 환승하여 중앙시장에서 내려 병원에 갔는데
다리가 아파 죽을것 같았다. 7층에 가니 형님 일인용 방에서 요양보호사와 계셨다.
"형님, 저 왔습니다." " 아이고 왔나? 니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네 근데 전화 해 놓고 후회했어, 아픈 사람 오라고해서 말이야" " 괘안심더 형님"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손에는 기브스를 하고 대변을 못봐서 가스가 배에 차서 배가 아프다고 하셨다. " 아이고, 형님, 뭘 잡숴야 변이 나오지요." 입맛이 없어 먹지를 못하겠다 하신다. 병원밥도 형편없고....
그러시더니 인제 가라, 니 얼굴 봤으니 됬다. 하셨다.
형님께서 미국에서 오셔서 우리 레지오 오셔서 날 처음본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 하시며 날 이뻐라 해 주셨다.
이 못난 날 이쁘다 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나도 형님을 좋아했다.
시간이 나면 죽을 좀 끓여서 가져 드려야 되겠다. 다행스럽게도 요양보호사가 조선족인지 요새사람같지 않게
어른을 잘 섬기고 자기 부모처럼 잘 모시고 있었다.
다리 때문에도 침을 맞고 다니는데 다리를 무리를 했더니 얼마나 아프던지 일요일 하루종일 몸이 좋지 않아 애를 먹었다
미사는 생각도 할수 없었다. 성당엔 잔치가 벌어지고 선물도 준다 하는데 갈 수가 없었다.
오늘아침 억지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나니 이제 좀 살겠다. 오늘이 초복이라 오는길에 병원근처 시장엘 가보니
복숭아가 쌌다. 수밀도 한 상자를 사들고왔다.
예전엔 복날이 되면 수박이나 한덩이 들고 어른들을 찾아뵙고 했는데 언제 부터인지 그 풍습은 없어졌다.
그리고 요즈음 아이들은 바쁘다. " 그래, 너들이 못하면 내가 한다". 복숭아와 닭튀김을 샀다
두 늙은이가 안하던 짓을 하는 복달음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