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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그렇게 화가 날수가 없었다. 정치 얘기는 않으려 했지만 지난 대선 부터 줄곳 이재명을 지지해온 나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화가 나서 바위에 계란을 수도 없이 던졌다. 내가 꿈꾸던 세상이 올려나 하고 한편으론 약간의 희망까지 가졌다. 그러나 여당쪽 사람들도 이 후보를 밀어주지 않는것 같고 이 후보 혼자 고군분투 하는것만 같았다. 언론은 그저 돈만 쫓아다니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생활보다는 자신의 부귀영화를 쫓아 철새 처럼 이리저리 다니고 어제 했던 말은 오늘아침 또 다 바뀌어 버린다. 공무원들도 소털같이 많은거 하나쯤은 괘안타 하며 뒷거래를 하고 우리나라는 언론과 공무원들만 청렴해지면 정말 살고 싶은 나라가 될것이다 대통령 당선자도 오로지 자신의 비리는 다 덮어버리고 이번엔 청와대가 있..

카테고리 없음 2022.03.21

회색인간?

라면을 끓였다. 다른때와는 달리 물을 충분히 넣고 면을 불린후 영감을 불렀다. " 탕을 해 놨구만! " " 영감, 날이 추우니 뜨듯한 국물 먹으라고 일부러 그랬구마" 이 영감 국물을 다 따라내고 먹는다. 윗지방에 봄눈이 오면서 추워져서 좀 따시게 먹으라 했는데 참, 말은 더럽게 안듣는다. 하긴 그제 혈액검사결과 너무 건강하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으니...... 아닌게 아니라 영감은 몸이 따듯하다. 나는 몸이 차거워 추위를 얼마나 타는지.... 뜨듯한 국물을 먹고 나니 이제 살겠다. 목련까지 피고 모란순 까지 올라오고 있는데 왠 눈이며, 허긴 목련이 얼지 않는것만 해도 다행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나는 단연코 돼지국밥이라 한다. 맛으로 치면 나는 전생이 서양사람인지 기름진걸 잘 먹는다. 버터..

카테고리 없음 2022.03.19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병원에 갔다. 매달 혈압약, 고지혈증약, 안정제 등등... 영감은 혈압약, 당뇨약, 수면제 등등..... 정신과를 십년이상 다니다가 집 가까이 냇과 전문의가 개업하는 바람에 잘 되었다 하고 병원을 옮겼다. 전에 다니던 병원 의사 선생님 한테는 미안하지만 버스타고 나가지 않아도 되고 의사도 젊고 친절하다. 건강검진도 받고 지난달에는 정밀 혈액검사를 했는데 두 늙은이가 다 괜찮다 한다. 의사샘은 내 작은 아들과 동갑인데 내 아들처럼 편안하다. 그래서 죽을때 까지 날 봐주어야 한다 했다. 집 가까이 이렇게 맘에 드는 병원이 있다는게 너무 편안하다. 영감과 각 방을 쓴지 근 일년이 다 되어간다. 혼자 자니 편안한지 잠꼬대도 덜하고 아침에 일어나 이불속에서 좀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니 좋은 점도 있다. 고양이도 내..

카테고리 없음 2022.03.15

그래도 행복했지?

투표는 했지만 내가 지지한 사람이 되지 않아 상심을 했지만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단 어른들의 말씀을 생각하며 아무튼 정치시작한지 몇개월 안 되는 이 사람이 잘 해서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오늘도 손자놈을 보러갔다. 우리지후, 코코코! 하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맞춤을 해준다. 할~~ 하며 할미를 부르기도 하고..... 며느리가 나가있는동안 아들놈이 왔다.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 점심을 먹었는데..... 아들놈 한테 얘기하니 엄마, 빵 있어요. 하면서 빵을 내어주고 과자도 내어오고 한다. 근데 며느리 앞에서는 시장하다 소리를 않는다. 괜한 짐작인지는 모르지만 이 시에미 한테 먹을걸 이것저것 내어오면 시에미가 살림 헤프게 산다 할까 싶어 할까봐 며느리 있을땐 애들 과자 좀 얻어먹고 커피 한잔이 전부다. 냉장..

카테고리 없음 2022.03.10

철없는 영감

영감과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화가난 나는 어딜 좀 갔다올까 하고 오만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 한데가 없다. 들고 다니는 헝겁가방을 들고 나오니 영감이 어데가노? 놀러가구마! 화는 나지만 내가 화를 안내면 되는데 화를 내고 집을 나온 내가 좀 그렇긴 하지만 머리 아파 밥 안먹겠다는 영감한테 이렇게 화가 나는 내가 나도 모르겠다. 할매는 갈데가 없었다. 옷도 살 필요가 없고 가방도 천지삐까리고..... 아무것도 내건 살 만한게 없었다. 시장으로 갔다. 땡초를 사고 고등어나 한마리 살까 싶어서, 벌써부터 생선이 먹고 싶었지만 영감은 내가 맨날 풀치를 사온다고 생각없는 소리를 했다. 그래, 오늘 미친짓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장에서 제일큰 칼치를 한마리 삼만원을 주고 두마리를 샀다. 자그마한 조기도..

카테고리 없음 2022.03.06

츤데레

큰 며느리와 영감흉을 보는데 며느리가 아버님은 츤데레라고 한다. 그기 머꼬? 겉으론 쌀쌀하고 이기적인것 같지만 속 마음은 따듯한 사람을 츤데레 라고 한다 하는데..... 요새 젊은 사람은 말을 줄임말로 하고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알아들을수도 없다. 아무리 바쁜시절이라 해도 말을 왜그리 줄이는지..... 아름다운 우리 말들이 다 훼손되고 있다. 사투리도 없어져 가고 메스미디어가 발전이 되어가며 우리 경상도 아이들은 책을 읽을때 보면 이건 표준어도 아니고 우리 경상도 말도 아니고 이상한 억양으로 읽어 대는데....... 사투리도 아름다운말이 정말 많은데 점점 사라져 가는것이 정말 아깝다. 손자들도 나를 할매라고 불러주면 좋겠는데 지 에미가 가르치는 말은 할머니 이니 할매란 말은 들지 못하게 생겼다. 큰..

카테고리 없음 2022.03.04

밥먹는 것도 미안타....

나는 전쟁을 겪지않은 세대다. 전쟁중에 태어났지만 내고향 대구 까지는 전쟁터가 되지않았고 53년에 휴전이 되었는데 나는 52년 에 태어났고 그당시 우리집은 잘 살았던것 같다. 큰언니, 작은언니, 모두 유치원을 다녔을 정도고 내 기억속 우리집 가는 골목엔 붉은 벽돌담이 높게 쳐져 있었던듯 하다. 그러다가 그 다음 기억은 대구시 변두리, 집옆은 논으로 되어있고 집 왼쪽엔 산이 있었고 집 옆엔 절벽처럼 되어있어 동생은 산위 나무에 줄을 매어 그 절벽을 타고 놀기도 했다. 그렇게 전쟁후 어려운 시절에 학교에서 처음엔 집에서 컵을 들고 학교를 가면 분유끓인 우유를 얻어먹었다. 그다음엔 옥수수죽을 끓여주어 컵으로 받아 수저도 없이 입으로 조금씩 마셨다. 그러더니 이젠 옥수수떡이 나오기 시작했다. 옥수수에다 우유를 ..

카테고리 없음 2022.02.27

영춘화 야들야들...

날씨는 차갑지만 그래도 입춘이 지났으니 영춘화를 보자하고 공원으로 갔다. 봄이면 제일먼저 피는꽃이다. 이 꽃이 있는줄도 몰랐다가 유행가 가사로 알게 되었다. 50 또는 60년대 노래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그런 가사를 듣고 궁금해서 찾아보고 알게 된 꽃이다. 시민공원 철책 울타리에 피어 있는데 좀 많이 피면 좋겠는데 듬성듬성 피어 있어 사진도 찍어와서 영감께 보여 주었다. 공원내 개울에는 잉어새끼들이 까맣게 모여 있고 청둥오리와 그냥 흰오리, 또 눈이 빨간 기러기같은 새도 있고 머리에 부라운색과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한 청록색 깃을 이고 있는 새도 있고. 어떤놈은 콧잔등을 하얗게 하고 몸은 쌔카맣게 하고 있고 또 어떤놈은 점박이 무늬를 하고 있었다. 자연은 참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공원엔 물..

카테고리 없음 2022.02.21

성당엔 못가고 주절주절...

아들놈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덕 홍게가 왔다고..... 해마다 이맘때쯤은 꼭 게를 사서 맛을 보여 주더니 올해도 게 맛을 보여준다고 주문했다 한다. 작은 손자놈도 이젠 할아버지 하고 많이 익숙해 졌는지 뽀뽀를 하고 과자도 먹여주곤 한다. 이쁘다.게를 실컷 먹고 남은 게딱지를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맛있다. 이사 갈곳은 집이 넓은 평수가 없어서 걱정이라 하는데 어찌되겠지.... 정부에서 소상공인들에게도 재난 지원금을 주니 아들놈이 견디기가 좀 쉬운 모양이다. 일요일인데 성당엔 못가고 인터넷으로 미사를 드린다. 주님이야 항상 나와 함께 계심을 믿지만 그래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성체를 영하고 싶어지는걸 참는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홍성남 신부님의 말씀대로 궂이 성체를 그렇게 자주 모시지..

카테고리 없음 2022.02.20

봄은 온다

아침일찍부터 전화가 온다. 누군가 보니 대구 친구이다. 이 친구는 생일이 나하고 같은 날이다. 같은 동네에 살며 국민학교 1 학년은 한 반이 되었다. 내 기억속의 그녀는 코에는 항상 코가 흘러내리고 눈꼽이 자주 끼고 이름도 못써서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혼자 칠판앞에 서서 모든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울면서 이름을 쓰곤 하였다. 오빠는 대학교수 였고 언니와 남동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의 부족함을 메꾸려고 교수인 오빠가 애를 쓴것 같았다. 물론 이건 나중에 우리가 철이 좀 들었을때 짐작하는바 모든 친구들이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 오빠가 이 친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학원을 열게 하였다. 당시는 음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동네 피아노 학원은 쉽게 열수 있을때 였다. 그렇게 동네피아노집을 열고 당시에는 하기 힘든 테니..

카테고리 없음 2022.02.17